
책소개
『장로교란 무엇인가』는 찰스 핫지가 1855년에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장로교 역사 학회에서 발표한 연설문이다. ‘구 프린스턴’을 상징하는 핫지는 여기에서 장로교 정치 제도의 원리들을 설명한다. 특별히, 교회의 권위, 직분자들의 지위, 그리고 교회의 연합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제공한다. 부록에서는 핫지의 교회론을 연구한 알렌 스트레인지 박사가 핫지의 『교회 정치』를 요약한다.
역자 서문
19세기 초, 미국 뉴욕시에서 사역하던 두 명의 장로교 목사인 아쉬벨 그린Ashbel Green과 사무엘 밀러Samuel Miller는 기존에 있던 목회자 양성 기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신학교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장로교 목사이자 교육자이던 아치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 역시 1808년에 개최된 미국 장로교 총회에서 사역자들을 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신학교의 건립을 촉구합니다.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3년 여간의 준비 기간을 보낸 미국 장로교 총회는 1811년에 새로운 신학교의 설립 계획을 인준합니다. 이때 신학교 설립의 원칙은 정통한 신학 교육을 실시하고 활력 있는 경건을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한국 장로교를 설명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프린스턴 신학교입니다. 안타깝게도 20세기 초반 프린스턴 신학교의 개혁 신학은 급격히 퇴색되었고, 결국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교수의 리더십 아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장로교의 전통을 잇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1812년 개교 시기부터 메이첸 박사의 퇴진 때까지 이어진 ‘구 프린스턴’의 가르침은 장로교 전통 아래에서 개혁주의를 고수하려는 이들에게 현재까지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찰스 핫지(1797-1878)는 이러한 ‘구 프린스턴’의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핫지는 그의 스승인 아치발드 알렉산더Archibald Alexander와 같은 열정적인 설교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지도를 받고 후임자로 성장한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와 같이 학문적 탁월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핫지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5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온화함과 쾌활함,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에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1] 핫지의 전기 작가 앤드류 호펙커Andrew Hoffecker의 평가처럼 찰스 핫지는 “학자로서 변하지 않는 생기를 유지”하며 프린스턴 신학교의 개혁 신학과 장로교 정신을 지켜냈습니다.[2]
그러나 후대가 핫지에 대해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의 높은 명성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는,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겪은 삶의 투쟁 역시 기억합니다. 핫지는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 사라 베이취Sarah Bache(벤자민 프랭클린의 증손녀)와의 사이에 8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이른 사별로 인해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평생 동안 여러 고질병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오른쪽 허벅지의 문제로 다리를 절었으며, 그로 인해 1833년부터 3년 동안 모든 수업을 집에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그는 가족 관계에서도 적잖은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대리부와도 같았던 친형 휴Hugh Hodge는 핫지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때때로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핫지는 교회 문제로도 여러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1837년경, 미국 장로교가 신‧ 구 학파로 분열되었습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남북 전쟁도 일어났습니다. 전쟁의 원인인 노예 제도는 교회 내에서도 수많은 분쟁을 야기했습니다. 핫지는 이러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자와의 꺼지지 않는 관계는 그가 겪은 삶의 여러 굴곡을 지탱해 주었으며, 그는 언제나 “놀랍도록 긍정적인 품행”을 유지했습니다.[3]
그러나 이러한 찰스 핫지의 신학 세계와 삶에 대한 소개는 한국 교회에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미국 장로 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알려져 왔지만, 그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는 한국어 자료는 드뭅니다.[4] 그의 저서들 중에서도 매우 일부만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명저인 세 권짜리 『조직 신학』전집을 한국의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손에 쥐어볼 수 없다는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린스턴 신학교는 개교 후에 줄곧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의 『변증신학 강요』를 교과서로 사용했습니다. 핫지의 『조직 신학』이 『변증신학 강요』를 대체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핫지의 교회론은 『조직 신학』이 아닌, 그의 사후에 출간된 『교회 정치』에 담겨 있습니다. 이를 한국어로 출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본 소책자 『장로교란 무엇인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5] 『장로교란 무엇인가』는 핫지가 1855년에 개최된 장로교 역사 학회에서 발표한 연설문입니다. 발표 직후, 이 연설문은 미국 장로교 총회 출판부를 통해 책자로 제작되어 보급되기도 했습니다.[6] 핫지의 연설문이 장로교의 교회론을 빠짐없이 아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장로교란 무엇인가』는 세 가지의 소주제, 교회의 권위, 직분자들의 지위, 그리고 교회의 연합에 대한 성경적 원리들을 제공합니다. 독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은 당시 미국의 남장로교와 북장로교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어느 측면에서는 미국 장로교 전체가 스코틀랜드의 전통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핫지 개인적으로도 구학파Old School에 속해 있었으면서도 신학파New School에 대해 온건한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독자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전개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름을 공부하며 고백주의적인 정통 장로교 안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건전한 고민으로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 장로 교회의 색깔을 입히는데 공헌한 미국 장로교의 귀한 유산들이 이 작은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책을 통한 모든 유익은 하나님을 향한 영광으로 돌려졌으면 합니다. SDG!
[1] Alan D. Strange, “The Personal Side of Charles Hodge,” in New Horizons in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October, 2012): 6. 구 프린스턴 신학교의 개교 200주년을 기념하며『New Horizons』저널에 기고된 알렌 스트레인지 교수의 소논문.
[2] W. Andrew Hoffecker, Charles Hodge: the Pride of Princeton, American Reformed Biographies (Phillipsburg, N.J: P&R Pub, 2011), 126.
[3] Strange, “The Personal Side of Charles Hodge,” 7.
[4] 찰스 핫지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원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최신 연구 자료들을 추천합니다. W. Andrew Hoffecker, Charles Hodge: the pride of Princeton, American Reformed biographies (Phillipsburg, N.J: P&R Pub, 2011), Paul C. Gutjahr, Charles Hodge: Guardian of American Orthodoxy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5] 『교회 정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알렌 스트레인지 교수님의 박사 논문 일부를 이 책에 함께 실었습니다. 이와 함께, 스트레인지 교수님이 정리하신 핫지의 작품 목록이 책 속 부록으로 제공됩니다. 이를 허락해주신 미드 아메리카 개혁 신학교(Mid-America Reformed Seminary)의 스트레인지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교수님의 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Alan D. Strange, The doctrine of the spirituality of the Church in the ecclesiology of Charles Hodge, Reformed academic dissertations (Phillipsburg, New Jersey: P&R Publishing, 2017).
[6] What Is Presbyterianism? An Address Delivered Before the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at Their Anniversary Meeting in Philadelphia on Tuesday Evening, May 1, 1855.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