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찬송에 대하여

시편을 부르는 것만이 개혁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 역사적인 개혁교회들은 시편을 불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편을 부르는 것은 가장 성경에 가까운 그리고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분명하게도, 시편 150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찬송집이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들어서야 시편 찬송에 대한 논의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한국의 개혁교회들을 바라보며, 단지 시편찬송만을 너무 강조하여 또 다른 개혁교회의 귀한 유산들을 놓칠까 염려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을 부른 것 또한 그 중 하나이고,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을 부르고자 한다는 것은 개혁교회가 가지는 개혁의 의지와 실행입니다. 실행과 공부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개혁교회가 하는 일은 공부하고 그 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경에 근거한 것들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 더욱 가까워져가는 열망과 변화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찬송가를 내려놓고 시편찬송가를 손에 올려놓는 일이 바로 실행입니다. 공부에서 나오는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고 있는 찬송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무런 비판없이 그것을 흥얼거립니다. 찬송가를 부르는 일은 보수적 것이고, CCM을 부르것은 너무 자유적이다라며 스스로의 잣대를 만들어냅니다. 찬송가와 CCM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느린 음악과 빠른음악? 묵직함과 가벼움?

시편찬송을 그 옆에 가져놓았을 때에는, 찬송가와 CCM이 같은 집합안에 있습니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찬송가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직접 주신 영감있는 노래이구요.

다시 강조합니다.

공부해 보십시요.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요.

색안경을 벗고, 불안감을 내려놓고, 시편을 부른 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부르십시요.

 

P.S.

결과물들을 보게됩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신 여러분께 묻습니다. 아마 찬송가를 보지 않고도 수십 곡 이상을 따라부르실 것입니다. 갓난 아기 때부터 시편을 붙들고 시편을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작은 성경이라고 부르는 시편을, 예수그리스도께서 곳곳에 드러나시는 시편을 자연스럽게 따라부르고 머릿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면…성경에 대한 이해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그것이 깊은 신앙의 진수로 들어가게 되는 시작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가 아니면 하나님을 올바로 찬양할 수 없다고 한 어거스틴의 말은 옳다. 우리가 아무리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여기 저기를 찾아다닌다 하더라도 이 목적(찬양)을 이루는 데 있어서 성령께서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 시편보다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시편을 찬송할 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입에 허락하신 찬송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John Calvin (The Genevan Psalter,1562)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